2009년 6월 7일 일요일

<베드로전서 1:3 - 1:12> 은혜의 교리(2부)

희랍어에서는 이 절들이 길고도 조심스럽게 감사의 단락을 구성하면서 한데 모여 있다. 긍휼(3절)은 은혜(10절)와 동의어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괴로움에 휩싸이게 되면 자주 하나님의 긍휼을 망각한다. 그의 놀라운 은혜를 묵상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가 우러나며 다시금 하나님을 한가운데로 모시게 된다. 베드로는 선지자들을 가리키며 이 단락을 매듭 짓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구원의 사역이, 가끔은 불확실하긴 해도, 구약성경 안에 지시되어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쏟고 있고, 이는 사도행전 2장에 있는 베드로의 유명한 설교를 생각나게 한다. 여기 아주 뛰어난 희망, 주 앞에서의 기쁨 그리고 기업에 관한 주제는 모두 구약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신앙 깊은 유대인들은 언제나 큰 놀라움 중에서 아브라함에게 먼저 하신(17:8) 그리고 다시 모세에게 하신(신 15:4) 그 땅의 기업에 관한 언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나안 땅은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그 백성은 흩어질, ‘소멸하고’ ‘사라지는’ 유업으로 보였다. 그리고 구약 기자들은, ‘기업’이란 말이 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주와 친히 함께 있는 상태에 적용되어지는 바와 같은 그러한 진리를 예측했다(참조, 예컨대, 시 73:25-28 과 16:5-11은 시편 기자들이 바라보는 그 기업이 큰 기쁨 가운데 끝을 맺고 있다.)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약성경에서 예견된 구원의 소망(5//절)이 미래적이며 멸망하지 아니할 ‘하늘에서의’ 삶이 될 것을 계시하였다. //것이 아무리 확실하다고 해도 하나님의 능력은 ‘보호받고’ 있는 우리를 위하여 ‘간직하신’ 것이므로 아직은 미래에 속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목적 전체이며 완성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 즉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의하여 생긴 구원이다(3,11절).

베드로는 그 독자들에게, 그들이 시험받고 있을 때와 그들의 기업에 관한 소망이 고난의 억누름 아래서 사라지고 있을 때 하나님만은 미더우시다는 것을 생각나게 하기 위하여 이 위대한 진리들을 요약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를 믿고 그를 사랑하는 것(8절)만이 모든 상황 속에서,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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