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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7일 토요일
2009년 8월 22일 토요일
겨울에 만나는 특별 새벽 영성 - 이 규현 목사님 설교
Day 1 - 영성산책 (골 2:6-7)
Day 2 - 몸의 영성 (롬 12:1-2)
Day 3 - 일의 영성 (골 3:23)
Day 4 - 쉼의 영성 (막 6:30-31)
Day 5 - 홀로 있음의 영성 (창 32:24-32)
Day 6 - 공동체의 영성 (엡 4:16)
2009년 7월 27일 월요일
소그룹 모임의 치료효과
소그룹이야말로 오늘날의 시대에 꼭 필요한 조직이라고 본다. 소그룹 공동체는 친밀감과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좋은 도구이다. 소그룹의 5가지 치료 효과에 대하여 얄롬이 연구하였다. 얄롬(Irvin D. Yalom)은 치료그룹에서 발견한 치료요소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일반화(Universality)의 요소를 들 수 있다. 소그룹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각자가 자기만이 아는 문제를 안고 있다. 소그룹에서는 자기 개방이 다른 형태의 모임에서 보다 쉽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처음은 자기 방어에 신경을 쓰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슴없이 자기 개방을 하기 시작한다. 자기를 개방하는 사람은 자기의 숨은 문제나 고민거리를 공개하는데 듣는 자들은 자기가 숨겨 놓고 있는 문제가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고 보니 나만이 안고 있는 고민이 아니구나’하는 이와 같은 공감대는 그룹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을 뿐 아니라 상호 인간관계를 깊은 동정과 사랑으로 묶어 놓는다.
둘째, 인간 상호간의 학습(Interpersonal Learning)을 들 수 있다. 그룹 안에서 자기 개방이 가능하게 되면 그 모임은 각자가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고 재형성하는 작은 사회와 같은 성격을 띠게 된다. 다른 사람을 통하여 자기를 더 정확하게 배운다.
셋째, 모방(Imitation)이라는 요소이다. 이것은 지도자를 닮는 학습행위를 말한다. 소그룹으로 모이게 되면 그룹 안에 있는 다른 형제들을 모방하는 경우가 많다. 한 형제가 자기보다 앞선다고 생각되면 그의 좋은 점을 본받으려고 하는 강한 의지가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쉽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넷째, 그룹 애착심(Cohesiveness)의 요소가 있다. 자기가 속한 소그룹이 자기에게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속감을 강하게 느끼고 그 그룹에 대한 애착을 가지면서 안전한 장소로 이식을 한다.
다섯째,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치유요소이다. 사람들은 대개 생각하는 것은 말하지만 자기가 느끼는 것은 좀처럼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감정의 교환은 거기에 어울리는 환경이 주어져야 가능한 것이다. 소그룹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가 느끼는 바를 어려움 없이 표현할 수 있는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큰 이점을 가지고 있다. 소그룹에서 답답한 마음을 속 시원하게 하소연할 수 있다. 소그룹은 서로의 감정을 받아 주는 스펀지의 구실을 한다.
오늘날 교회는 대그룹이 지나치게 강화되어 있다. 교회마다 소그룹의 조직이 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모양은 있으나 기능이 상실되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마치 중풍병자와 같이 몸은 있으나 잘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위에서 제시한 소그룹의 놀라운 유익한 면이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소그룹의 기능이 회복되는 것이 초대교회의 회복이며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를 진정으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첫째, 일반화(Universality)의 요소를 들 수 있다. 소그룹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각자가 자기만이 아는 문제를 안고 있다. 소그룹에서는 자기 개방이 다른 형태의 모임에서 보다 쉽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처음은 자기 방어에 신경을 쓰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슴없이 자기 개방을 하기 시작한다. 자기를 개방하는 사람은 자기의 숨은 문제나 고민거리를 공개하는데 듣는 자들은 자기가 숨겨 놓고 있는 문제가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고 보니 나만이 안고 있는 고민이 아니구나’하는 이와 같은 공감대는 그룹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을 뿐 아니라 상호 인간관계를 깊은 동정과 사랑으로 묶어 놓는다.
둘째, 인간 상호간의 학습(Interpersonal Learning)을 들 수 있다. 그룹 안에서 자기 개방이 가능하게 되면 그 모임은 각자가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고 재형성하는 작은 사회와 같은 성격을 띠게 된다. 다른 사람을 통하여 자기를 더 정확하게 배운다.
셋째, 모방(Imitation)이라는 요소이다. 이것은 지도자를 닮는 학습행위를 말한다. 소그룹으로 모이게 되면 그룹 안에 있는 다른 형제들을 모방하는 경우가 많다. 한 형제가 자기보다 앞선다고 생각되면 그의 좋은 점을 본받으려고 하는 강한 의지가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쉽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넷째, 그룹 애착심(Cohesiveness)의 요소가 있다. 자기가 속한 소그룹이 자기에게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속감을 강하게 느끼고 그 그룹에 대한 애착을 가지면서 안전한 장소로 이식을 한다.
다섯째,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치유요소이다. 사람들은 대개 생각하는 것은 말하지만 자기가 느끼는 것은 좀처럼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감정의 교환은 거기에 어울리는 환경이 주어져야 가능한 것이다. 소그룹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가 느끼는 바를 어려움 없이 표현할 수 있는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큰 이점을 가지고 있다. 소그룹에서 답답한 마음을 속 시원하게 하소연할 수 있다. 소그룹은 서로의 감정을 받아 주는 스펀지의 구실을 한다.
오늘날 교회는 대그룹이 지나치게 강화되어 있다. 교회마다 소그룹의 조직이 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모양은 있으나 기능이 상실되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마치 중풍병자와 같이 몸은 있으나 잘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위에서 제시한 소그룹의 놀라운 유익한 면이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소그룹의 기능이 회복되는 것이 초대교회의 회복이며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를 진정으로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09년 7월 26일 일요일
2009년 6월 29일 월요일
3T [이우근 광야의 묵상]
▲ 법조인들만큼 시험지옥을 톡톡히 겪어온 직업인도 드뭅니다. 각급학교의 입학시험이나 졸업시험이야 누군들 거치지 않았으랴만, 1・2・3차에 이르는 사법시험을 통과한 후에도 다시 사법연수원의 중간시험과 수료시험 등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법률가의 자격을 얻습니다.
사법연수원에서 근무할 때, 이미 사법시험에 합격한 연수생들이 또다시 시험공부에 매달려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연수원 교수들에게 시험문제를 좀 쉽게 내주라고 당부한 적도 있었지만, 연수생들의 고생을 경감시키는 데는 역부족이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문제가 쉽고 어렵고를 떠나 자신들의 앞길을 좌우하는 시험관문을 소홀히 여길 연수생들이 아니었습니다. 시험은 법조인들의 운명이나 다름없습니다.
비단 법조인만이 아닙니다. 어떤 일자리든 그것을 얻기 위한 테스트 test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각종 공무원시험이나 의약사 醫藥師 자격시험, 석박사 碩博士 학위취득시험 등은 매우 어려운 테스트로 꼽힙니다. 정치인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거라는 시험을 4년 혹은 5년마다 치러내야 합니다.
웬만한 직업을 얻으려면 외국어능력 테스트 하나 정도는 거쳐야 하고, 자동차운전을 하려 해도 운전면허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취업이 어려워진 이즈음에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엄격한 전형과정을 두고 있습니다. 책상에 앉아 제한된 시간 안에 문제를 풀어 종이답안지에 써내는 식은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면접시험이라도 치러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그 나름의 테스트 과정은 있기 마련입니다.
▲ 객관적 검증이 어려운 문화예술분야에도 테스트의 과정이 있습니다. 문단 文壇에 진출하려면 주요 언론사의 신춘문예나 문예지 文藝誌의 추천을 통과해야 하고, 음악가 미술가 무용가가 되려는 청소년들 앞에도 실기 實技 콩쿠르나 콘테스트 contest의 난관 難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려운 테스트를 거쳐 어떤 자격을 얻었다 해도 아직 끝이 아닙니다. 시험 뒤에는 시련 試鍊이 찾아오는 법, test를 통과하고 나면 trial을 만나게 됩니다. 업무를 배우고 익히는데도 시련이 따르지만, 하나의 직업인으로서 가정이나 동료나 사회와 조화를 이뤄가려면 적지 않은 갈등에 부딪치기 일쑤입니다. 아니, 세상을 등지고 홀로 입산수도 入山修道하는 자리에도 시련과 역경 逆境은 어김없이 찾아듭니다.
어떤 직업이든, 일을 올곧게 처리해 나가는 데는 남모르는 고초 苦楚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속절없이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시련은 한 인격을 보다 성숙한 차원으로 이끄는 자양분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좌절과 실의 失意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수많은 인재 人才들이 혹독한 시련 앞에서 실패의 쓴잔을 들이키고 주저앉았습니다. 정치적 탄압, 조직의 압력, 여론의 몰매 같은 사회적 시련도 있고, 병고 病苦나 가난 같은 개인적 시련도 있습니다.
시련은 정의와 불의 不義를 가릅니다. 시련이 순교자와 배교자 背敎者를 갈라놓습니다. 시련이 독립지사와 매국노의 정체를 폭로했으며, 시련이 민주투사와 정치꾼의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한 인격의 미추 美醜도 시련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재판을 영어로 trial이라고 합니다. 시련은 시험보다 더 어렵고 두려운 과정입니다.
▲ 안타까운 것은, 어려운 시험을 거뜬히 통과하고 엄혹한 시련을 잘 견뎌낸 이들이 나중에 엉뚱한 유혹에 빠져 그 값진 성취들을 쓰레기더미로 만드는 일이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시련 trial이 직접적인 장애라면, 유혹 temptation은 간접적이고 은근한 장애물입니다. 시련이 칼이라면, 유혹은 화려한 독버섯입니다. 칼 앞에서는 경계심을 품지만 향긋한 내음, 아름다운 모습 앞에서는 가슴을 풀어헤치게 됩니다.
맨손으로 수백 명의 장병을 때려눕힌 거인 삼손도 미녀 들릴라 한 여인 앞에서 실패했고, 이스라엘 최고의 임금 다윗도 아리따운 여인 밧세바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삼손과 다윗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검증 test을 당당히 통과한 사사 士師 Judge요 제왕이었으며 외적 外敵의 위협이라는 시련 trial을 물리친 위인들이었지만 한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 temptation 앞에서는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돈은 좋은 하인도 만들고, 나쁜 주인도 만든다. Money makes a good servant, but a bad master” 경험주의철학의 비조 鼻祖요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과 ‘신기관론 新機關論 Novum Organum’ 등을 저술한 베이컨 F. Bacon의 말입니다. 베이컨은 대영제국의 귀족원 의장을 겸임하는 최고위 대법관 Lord Chancellor과 국새상서 國璽尙書 Lord Keeper of the Great Seal를 지낸 뒤에 수뢰죄 受賂罪로 수감되었습니다. 정치적 음모라는 설도 있으나, 본인은 혐의를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베이컨은 이런 말도 했다고 합니다. “부를 경멸하는 것은 부자가 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베이컨이 부자가 될 자신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끝내 공직자의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채 야인 野人으로 죽어 그나마 철학자의 이름을 후세에 남겼습니다.
▲ 부 富와 명예, 권력과 쾌락은 어느 누구도 가리지 않고 강력한 유혹의 향기를 뿜어댑니다. 저잣거리의 장삼이사 張三李四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법조인, 교육자, 심지어 세속 世俗의 유혹을 초개처럼 여길 터인 문화예술인과 종교인들마저도 그 앞에서 뒤뚱거리는 모습이 전혀 낯설어 보이지 않습니다.
귓속말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뭐냐?”고 물으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돈’이라는 대답을 내놓지 않을까? 그들이 솔직하다면 말입니다. 남몰래 향락의 침상을 뒹굴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저명인사도 하나 둘이 아닙니다. “장관이 얼마나 좋은 자린데...”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부산의 무슨 복집에선가 전직 법무부장관이라는 사람이 “우리가 남이가”라며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다가 불쑥 내뱉은 소리입니다. 장관이 얼마나 좋은 자리인지는 몰라도, 권력과 명예가 오죽이나 좋았으면 법치국가의 법집행을 맡았던 사람이 법을 짓밟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을까.
수많은 젊은이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계절, 새 봄입니다.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에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 보이는 터에, 저 싱싱한 젊은이들이 이제부터 어려운 시험 test으로 시작해서 모진 시련 trial을 거쳐 달콤한 유혹 temptation의 마지막 언덕까지 넘어야 하는 3T의 역경은 생각만 해도 벌써 안쓰러워집니다.
아직 일자리를 얻지 못하여 취업시험 test 준비에 여념이 없는 청년들에게 trial과 temptation을 말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기도 하려니와 잔인하게까지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차피 그들은 시련을 겪는 중입니다. 시험준비 자체가 곧 시련이요, test의 단계가 이미 trial의 시기인 셈입니다. 그 시련이 주는 현실적, 심리적인 상처는 자못 깊습니다. 미취업 청년들에 대한 사려 깊은 정책이 절실히 요청되는 이유입니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여, test와 trial과 temptation의 3T 앞에 무릎 꿇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 마침내 값진 승리에 도달하기를...
사법연수원에서 근무할 때, 이미 사법시험에 합격한 연수생들이 또다시 시험공부에 매달려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연수원 교수들에게 시험문제를 좀 쉽게 내주라고 당부한 적도 있었지만, 연수생들의 고생을 경감시키는 데는 역부족이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문제가 쉽고 어렵고를 떠나 자신들의 앞길을 좌우하는 시험관문을 소홀히 여길 연수생들이 아니었습니다. 시험은 법조인들의 운명이나 다름없습니다.
비단 법조인만이 아닙니다. 어떤 일자리든 그것을 얻기 위한 테스트 test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각종 공무원시험이나 의약사 醫藥師 자격시험, 석박사 碩博士 학위취득시험 등은 매우 어려운 테스트로 꼽힙니다. 정치인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거라는 시험을 4년 혹은 5년마다 치러내야 합니다.
웬만한 직업을 얻으려면 외국어능력 테스트 하나 정도는 거쳐야 하고, 자동차운전을 하려 해도 운전면허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취업이 어려워진 이즈음에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엄격한 전형과정을 두고 있습니다. 책상에 앉아 제한된 시간 안에 문제를 풀어 종이답안지에 써내는 식은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면접시험이라도 치러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그 나름의 테스트 과정은 있기 마련입니다.
▲ 객관적 검증이 어려운 문화예술분야에도 테스트의 과정이 있습니다. 문단 文壇에 진출하려면 주요 언론사의 신춘문예나 문예지 文藝誌의 추천을 통과해야 하고, 음악가 미술가 무용가가 되려는 청소년들 앞에도 실기 實技 콩쿠르나 콘테스트 contest의 난관 難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려운 테스트를 거쳐 어떤 자격을 얻었다 해도 아직 끝이 아닙니다. 시험 뒤에는 시련 試鍊이 찾아오는 법, test를 통과하고 나면 trial을 만나게 됩니다. 업무를 배우고 익히는데도 시련이 따르지만, 하나의 직업인으로서 가정이나 동료나 사회와 조화를 이뤄가려면 적지 않은 갈등에 부딪치기 일쑤입니다. 아니, 세상을 등지고 홀로 입산수도 入山修道하는 자리에도 시련과 역경 逆境은 어김없이 찾아듭니다.
어떤 직업이든, 일을 올곧게 처리해 나가는 데는 남모르는 고초 苦楚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속절없이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시련은 한 인격을 보다 성숙한 차원으로 이끄는 자양분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좌절과 실의 失意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수많은 인재 人才들이 혹독한 시련 앞에서 실패의 쓴잔을 들이키고 주저앉았습니다. 정치적 탄압, 조직의 압력, 여론의 몰매 같은 사회적 시련도 있고, 병고 病苦나 가난 같은 개인적 시련도 있습니다.
시련은 정의와 불의 不義를 가릅니다. 시련이 순교자와 배교자 背敎者를 갈라놓습니다. 시련이 독립지사와 매국노의 정체를 폭로했으며, 시련이 민주투사와 정치꾼의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한 인격의 미추 美醜도 시련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재판을 영어로 trial이라고 합니다. 시련은 시험보다 더 어렵고 두려운 과정입니다.
▲ 안타까운 것은, 어려운 시험을 거뜬히 통과하고 엄혹한 시련을 잘 견뎌낸 이들이 나중에 엉뚱한 유혹에 빠져 그 값진 성취들을 쓰레기더미로 만드는 일이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시련 trial이 직접적인 장애라면, 유혹 temptation은 간접적이고 은근한 장애물입니다. 시련이 칼이라면, 유혹은 화려한 독버섯입니다. 칼 앞에서는 경계심을 품지만 향긋한 내음, 아름다운 모습 앞에서는 가슴을 풀어헤치게 됩니다.
맨손으로 수백 명의 장병을 때려눕힌 거인 삼손도 미녀 들릴라 한 여인 앞에서 실패했고, 이스라엘 최고의 임금 다윗도 아리따운 여인 밧세바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삼손과 다윗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검증 test을 당당히 통과한 사사 士師 Judge요 제왕이었으며 외적 外敵의 위협이라는 시련 trial을 물리친 위인들이었지만 한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 temptation 앞에서는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돈은 좋은 하인도 만들고, 나쁜 주인도 만든다. Money makes a good servant, but a bad master” 경험주의철학의 비조 鼻祖요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과 ‘신기관론 新機關論 Novum Organum’ 등을 저술한 베이컨 F. Bacon의 말입니다. 베이컨은 대영제국의 귀족원 의장을 겸임하는 최고위 대법관 Lord Chancellor과 국새상서 國璽尙書 Lord Keeper of the Great Seal를 지낸 뒤에 수뢰죄 受賂罪로 수감되었습니다. 정치적 음모라는 설도 있으나, 본인은 혐의를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베이컨은 이런 말도 했다고 합니다. “부를 경멸하는 것은 부자가 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베이컨이 부자가 될 자신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끝내 공직자의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채 야인 野人으로 죽어 그나마 철학자의 이름을 후세에 남겼습니다.
▲ 부 富와 명예, 권력과 쾌락은 어느 누구도 가리지 않고 강력한 유혹의 향기를 뿜어댑니다. 저잣거리의 장삼이사 張三李四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법조인, 교육자, 심지어 세속 世俗의 유혹을 초개처럼 여길 터인 문화예술인과 종교인들마저도 그 앞에서 뒤뚱거리는 모습이 전혀 낯설어 보이지 않습니다.
귓속말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뭐냐?”고 물으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돈’이라는 대답을 내놓지 않을까? 그들이 솔직하다면 말입니다. 남몰래 향락의 침상을 뒹굴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저명인사도 하나 둘이 아닙니다. “장관이 얼마나 좋은 자린데...”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부산의 무슨 복집에선가 전직 법무부장관이라는 사람이 “우리가 남이가”라며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다가 불쑥 내뱉은 소리입니다. 장관이 얼마나 좋은 자리인지는 몰라도, 권력과 명예가 오죽이나 좋았으면 법치국가의 법집행을 맡았던 사람이 법을 짓밟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을까.
수많은 젊은이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계절, 새 봄입니다.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에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 보이는 터에, 저 싱싱한 젊은이들이 이제부터 어려운 시험 test으로 시작해서 모진 시련 trial을 거쳐 달콤한 유혹 temptation의 마지막 언덕까지 넘어야 하는 3T의 역경은 생각만 해도 벌써 안쓰러워집니다.
아직 일자리를 얻지 못하여 취업시험 test 준비에 여념이 없는 청년들에게 trial과 temptation을 말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기도 하려니와 잔인하게까지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차피 그들은 시련을 겪는 중입니다. 시험준비 자체가 곧 시련이요, test의 단계가 이미 trial의 시기인 셈입니다. 그 시련이 주는 현실적, 심리적인 상처는 자못 깊습니다. 미취업 청년들에 대한 사려 깊은 정책이 절실히 요청되는 이유입니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여, test와 trial과 temptation의 3T 앞에 무릎 꿇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 마침내 값진 승리에 도달하기를...
2009년 6월 15일 월요일
2009년 6월 7일 일요일
<베드로전서 1:3 - 1:12> 은혜의 교리(2부)
희랍어에서는 이 절들이 길고도 조심스럽게 감사의 단락을 구성하면서 한데 모여 있다. 긍휼(3절)은 은혜(10절)와 동의어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괴로움에 휩싸이게 되면 자주 하나님의 긍휼을 망각한다. 그의 놀라운 은혜를 묵상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가 우러나며 다시금 하나님을 한가운데로 모시게 된다. 베드로는 선지자들을 가리키며 이 단락을 매듭 짓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구원의 사역이, 가끔은 불확실하긴 해도, 구약성경 안에 지시되어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쏟고 있고, 이는 사도행전 2장에 있는 베드로의 유명한 설교를 생각나게 한다. 여기 아주 뛰어난 희망, 주 앞에서의 기쁨 그리고 기업에 관한 주제는 모두 구약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신앙 깊은 유대인들은 언제나 큰 놀라움 중에서 아브라함에게 먼저 하신(17:8) 그리고 다시 모세에게 하신(신 15:4) 그 땅의 기업에 관한 언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나안 땅은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그 백성은 흩어질, ‘소멸하고’ ‘사라지는’ 유업으로 보였다. 그리고 구약 기자들은, ‘기업’이란 말이 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주와 친히 함께 있는 상태에 적용되어지는 바와 같은 그러한 진리를 예측했다(참조, 예컨대, 시 73:25-28 과 16:5-11은 시편 기자들이 바라보는 그 기업이 큰 기쁨 가운데 끝을 맺고 있다.)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약성경에서 예견된 구원의 소망(5//절)이 미래적이며 멸망하지 아니할 ‘하늘에서의’ 삶이 될 것을 계시하였다. //것이 아무리 확실하다고 해도 하나님의 능력은 ‘보호받고’ 있는 우리를 위하여 ‘간직하신’ 것이므로 아직은 미래에 속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목적 전체이며 완성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 즉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의하여 생긴 구원이다(3,11절).
베드로는 그 독자들에게, 그들이 시험받고 있을 때와 그들의 기업에 관한 소망이 고난의 억누름 아래서 사라지고 있을 때 하나님만은 미더우시다는 것을 생각나게 하기 위하여 이 위대한 진리들을 요약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를 믿고 그를 사랑하는 것(8절)만이 모든 상황 속에서,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신앙 깊은 유대인들은 언제나 큰 놀라움 중에서 아브라함에게 먼저 하신(17:8) 그리고 다시 모세에게 하신(신 15:4) 그 땅의 기업에 관한 언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나안 땅은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그 백성은 흩어질, ‘소멸하고’ ‘사라지는’ 유업으로 보였다. 그리고 구약 기자들은, ‘기업’이란 말이 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주와 친히 함께 있는 상태에 적용되어지는 바와 같은 그러한 진리를 예측했다(참조, 예컨대, 시 73:25-28 과 16:5-11은 시편 기자들이 바라보는 그 기업이 큰 기쁨 가운데 끝을 맺고 있다.)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약성경에서 예견된 구원의 소망(5//절)이 미래적이며 멸망하지 아니할 ‘하늘에서의’ 삶이 될 것을 계시하였다. //것이 아무리 확실하다고 해도 하나님의 능력은 ‘보호받고’ 있는 우리를 위하여 ‘간직하신’ 것이므로 아직은 미래에 속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목적 전체이며 완성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 즉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의하여 생긴 구원이다(3,11절).
베드로는 그 독자들에게, 그들이 시험받고 있을 때와 그들의 기업에 관한 소망이 고난의 억누름 아래서 사라지고 있을 때 하나님만은 미더우시다는 것을 생각나게 하기 위하여 이 위대한 진리들을 요약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를 믿고 그를 사랑하는 것(8절)만이 모든 상황 속에서,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베드로전서 1:1 - 1:2> 은혜의 교리(1부)
이 서신의 처음 구절에 관한 주석들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몇 가지 가장 중요한 신앙 교리들이 그 속에 다시 언급되고 있다. 이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출발점과 목적 또는 목표와 관계된다. 성부 하나님은 긍휼과 은혜로 가득하셔서(2,3,10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중생(신생)을 가져오셨고 웅장한 기업을 위해 자기 백성을 보존하시는(4,5절) 분으로 그의 선지자라도 이제 성령에 의하여 그리스도인에게 계시된 이 메시지의 놀라움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10-12절). 우리는 천사도 누리지 못한 특권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1-2절:‘디아스포라(Diaspora)'나 흩어져 있음(Dispersion)' 이란 말은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서 살고 있는 유대 민족을 표현하는 전문적인 용어이다. 이 말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타락의 결과로 고대 근동 세계 도처에 유랑하는 이스라엘 백성에 연관되어 처음 사용되었다(참조, 예컨대, 사 11:12). 그래서 베드로가 편지 쓰고 있는 자들 대부분 회심한 유대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그렇든지 아니든지간에 ’흩어져 있음‘이나 ’나그네‘라는 단어는 아마도 자신의 참 고향이 이 세상에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 모든 자에게 대하여 은유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겠다(참조, 17절; 2:11; 창 23 ; 4; 시 39:12). 이 생의 덧없음이란 동일한 생각이, 예컨대 에베소서 2:19과 히브리서 11:13에서 발견된다. 베드로는 일부러 바울 서신에서 발견되는 바 교회가 실상 참 이스라엘이라는 생각 위에서 서신을 전개하고 있다(갈 6:16; 롬 9:6-8 ; 빌 3:31). 이 생각은 2:4-12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거기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며 따라서 다른 고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발견될 수 있다.
하나님의 주도적인 선택의 은혜에 대한 강조가 이 서신 전반에 흐르고 있지만 시작은 여기 2절에서 하고 있다. 신약에서 일반적인 사실인 선택은, 이것이 없이는 ‘세상의 나그네’(NIV)로서 아무런 안전 보장이 없는 자들에게 평안을 주시는 전적으로 적극적인 교리이다. 삼위 하나님께서 이 일에 함께 사역하고 계신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복종이라는 이 부름의 목적을 위하여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는(따로 떼어놓으시는) 성부의 목적을 수행하고 계신다(15절과 비교).
‘순종’도 이 서신에서 뚜렷한 주제이다. 22절을 보면 우리는 그것이 복음 자체에 순복하는 순종, 혹은 그것에 대한 수납을 지지하는 것을 알게 된다. 이는 필연적인 관계에서 성취되어야 한다.
‘피뿌림’이란 말은 하나님의 그 백성과의 새 언약-우리가 순종하지 않았을 때 죄사함을 가져다 주는 언약-의 수립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은 출애굽기 24:6-8을 기억하게 하는 것으로, 거기에 보면 모세가 중재한 그 언약도 피로서 체결되었고 그 백성은 죽게 순종을 맹세했다.
1-2절:‘디아스포라(Diaspora)'나 흩어져 있음(Dispersion)' 이란 말은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서 살고 있는 유대 민족을 표현하는 전문적인 용어이다. 이 말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타락의 결과로 고대 근동 세계 도처에 유랑하는 이스라엘 백성에 연관되어 처음 사용되었다(참조, 예컨대, 사 11:12). 그래서 베드로가 편지 쓰고 있는 자들 대부분 회심한 유대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그렇든지 아니든지간에 ’흩어져 있음‘이나 ’나그네‘라는 단어는 아마도 자신의 참 고향이 이 세상에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 모든 자에게 대하여 은유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겠다(참조, 17절; 2:11; 창 23 ; 4; 시 39:12). 이 생의 덧없음이란 동일한 생각이, 예컨대 에베소서 2:19과 히브리서 11:13에서 발견된다. 베드로는 일부러 바울 서신에서 발견되는 바 교회가 실상 참 이스라엘이라는 생각 위에서 서신을 전개하고 있다(갈 6:16; 롬 9:6-8 ; 빌 3:31). 이 생각은 2:4-12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거기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며 따라서 다른 고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발견될 수 있다.
하나님의 주도적인 선택의 은혜에 대한 강조가 이 서신 전반에 흐르고 있지만 시작은 여기 2절에서 하고 있다. 신약에서 일반적인 사실인 선택은, 이것이 없이는 ‘세상의 나그네’(NIV)로서 아무런 안전 보장이 없는 자들에게 평안을 주시는 전적으로 적극적인 교리이다. 삼위 하나님께서 이 일에 함께 사역하고 계신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복종이라는 이 부름의 목적을 위하여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는(따로 떼어놓으시는) 성부의 목적을 수행하고 계신다(15절과 비교).
‘순종’도 이 서신에서 뚜렷한 주제이다. 22절을 보면 우리는 그것이 복음 자체에 순복하는 순종, 혹은 그것에 대한 수납을 지지하는 것을 알게 된다. 이는 필연적인 관계에서 성취되어야 한다.
‘피뿌림’이란 말은 하나님의 그 백성과의 새 언약-우리가 순종하지 않았을 때 죄사함을 가져다 주는 언약-의 수립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은 출애굽기 24:6-8을 기억하게 하는 것으로, 거기에 보면 모세가 중재한 그 언약도 피로서 체결되었고 그 백성은 죽게 순종을 맹세했다.
2009년 5월 18일 월요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내가
나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했을 때
참 많이 노력해야 했습니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하여...
내가
나의 사랑으로 남편을 사랑했을 때
참 많이 울어야 했습니다.
남편을 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내가
나의 사랑으로 아이들을 사랑했을 때
참 많이 화를 내야 했습니다.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욕심 때문에...
내가
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했을 때
참 많이 참아야 했습니다.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윤리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을 하니
사랑하는 일이 쉬워졌습니다.
사랑하는 일이 기쁨이 됩니다.
사랑하는 일이 감사가 됩니다.
-사랑이 가장 아름답다 中 -
나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했을 때
참 많이 노력해야 했습니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하여...
내가
나의 사랑으로 남편을 사랑했을 때
참 많이 울어야 했습니다.
남편을 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내가
나의 사랑으로 아이들을 사랑했을 때
참 많이 화를 내야 했습니다.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욕심 때문에...
내가
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했을 때
참 많이 참아야 했습니다.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윤리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을 하니
사랑하는 일이 쉬워졌습니다.
사랑하는 일이 기쁨이 됩니다.
사랑하는 일이 감사가 됩니다.
-사랑이 가장 아름답다 中 -
2009년 4월 22일 수요일
What Are Friends For? A Longer Life
In the quest for better health, many people turn to doctors, self-help books or herbal supplements. But they overlook a powerful weapon that could help them fight illness and depression, speed recovery, slow aging and prolong life: their friends.
Researchers are only now starting to pay attention to the importance of friendship and social networks in overall health. A 10-year Australian study found that older people with a large circle of friends were 22 percent less likely to die during the study period than those with fewer friends. A large 2007 study showed an increase of nearly 60 percent in the risk for obesity among people whose friends gained weight. And last year, Harvard researchers reported that strong social ties could promote brain health as we age.
“In general, the role of friendship in our lives isn’t terribly well appreciated,” said Rebecca G. Adams, a professor of sociology at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Greensboro. “There is just scads of stuff on families and marriage, but very little on friendship. It baffles me. Friendship has a bigger impact on our psychological well-being than family relationships.”
In a new book, “The Girls From Ames: A Story of Women and a 40-Year Friendship” (Gotham), Jeffrey Zaslow tells the story of 11 childhood friends who scattered from Iowa to eight different states. Despite the distance, their friendships endured through college and marriage, divorce and other crises, including the death of one of the women in her 20s.
Using scrapbooks, photo albums and the women’s own memories, Mr. Zaslow chronicles how their close friendships have shaped their lives and continue to sustain them. The role of friendship in their health and well-being is evident in almost every chapter.
Two of the friends have recently learned they have breast cancer. Kelly Zwagerman, now a high school teacher who lives in Northfield, Minn., said that when she got her diagnosis in September 2007, her doctor told her to surround herself with loved ones. Instead, she reached out to her childhood friends, even though they lived far away.
“The first people I told were the women from Ames,” she said in an interview. “I e-mailed them. I immediately had e-mails and phone calls and messages of support. It was instant that the love poured in from all of them.”
When she complained that her treatment led to painful sores in her throat, an Ames girl sent a smoothie maker and recipes. Another, who had lost a daughter to leukemia, sent Ms. Zwagerman a hand-knitted hat, knowing her head would be cold without hair; still another sent pajamas made of special fabric to help cope with night sweats.
Ms. Zwagerman said she was often more comfortable discussing her illness with her girlfriends than with her doctor. “We go so far back that these women will talk about anything,” she said.
Ms. Zwagerman says her friends from Ames have been an essential factor in her treatment and recovery, and research bears her out. In 2006, a study of nearly 3,000 nurses with breast cancer found that women without close friends were four times as likely to die from the disease as women with 10 or more friends. And notably, proximity and the amount of contact with a friend wasn’t associated with survival. Just having friends was protective.
Bella DePaulo, a visiting psychology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 whose work focuses on single people and friendships, notes that in many studies, friendship has an even greater effect on health than a spouse or family member. In the study of nurses with breast cancer, having a spouse wasn’t associated with survival.
While many friendship studies focus on the intense relationships of women, some research shows that men can benefit, too. In a six-year study of 736 middle-age Swedish men, attachment to a single person didn’t appear to affect the risk of heart attack and fatal coronary heart disease, but having friendships did. Only smoking was as important a risk factor as lack of social support.
Exactly why friendship has such a big effect isn’t entirely clear. While friends can run errands and pick up medicine for a sick person, the benefits go well beyond physical assistance; indeed, proximity does not seem to be a factor.
It may be that people with strong social ties also have better access to health services and care. Beyond that, however, friendship clearly has a profound psychological effect. People with strong friendships are less likely than others to get colds, perhaps because they have lower stress levels.
Last year, researchers studied 34 students at the University of Virginia, taking them to the base of a steep hill and fitting them with a weighted backpack. They were then asked to estimate the steepness of the hill. Some participants stood next to friends during the exercise, while others were alone.
The students who stood with friends gave lower estimates of the steepness of the hill. And the longer the friends had known each other, the less steep the hill appeared.
“People with stronger friendship networks feel like there is someone they can turn to,” said Karen A. Roberto, director of the center for gerontology at Virginia Tech. “Friendship is an undervalued resource. The consistent message of these studies is that friends make your life better.”
Researchers are only now starting to pay attention to the importance of friendship and social networks in overall health. A 10-year Australian study found that older people with a large circle of friends were 22 percent less likely to die during the study period than those with fewer friends. A large 2007 study showed an increase of nearly 60 percent in the risk for obesity among people whose friends gained weight. And last year, Harvard researchers reported that strong social ties could promote brain health as we age.
“In general, the role of friendship in our lives isn’t terribly well appreciated,” said Rebecca G. Adams, a professor of sociology at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Greensboro. “There is just scads of stuff on families and marriage, but very little on friendship. It baffles me. Friendship has a bigger impact on our psychological well-being than family relationships.”
In a new book, “The Girls From Ames: A Story of Women and a 40-Year Friendship” (Gotham), Jeffrey Zaslow tells the story of 11 childhood friends who scattered from Iowa to eight different states. Despite the distance, their friendships endured through college and marriage, divorce and other crises, including the death of one of the women in her 20s.
Using scrapbooks, photo albums and the women’s own memories, Mr. Zaslow chronicles how their close friendships have shaped their lives and continue to sustain them. The role of friendship in their health and well-being is evident in almost every chapter.
Two of the friends have recently learned they have breast cancer. Kelly Zwagerman, now a high school teacher who lives in Northfield, Minn., said that when she got her diagnosis in September 2007, her doctor told her to surround herself with loved ones. Instead, she reached out to her childhood friends, even though they lived far away.
“The first people I told were the women from Ames,” she said in an interview. “I e-mailed them. I immediately had e-mails and phone calls and messages of support. It was instant that the love poured in from all of them.”
When she complained that her treatment led to painful sores in her throat, an Ames girl sent a smoothie maker and recipes. Another, who had lost a daughter to leukemia, sent Ms. Zwagerman a hand-knitted hat, knowing her head would be cold without hair; still another sent pajamas made of special fabric to help cope with night sweats.
Ms. Zwagerman said she was often more comfortable discussing her illness with her girlfriends than with her doctor. “We go so far back that these women will talk about anything,” she said.
Ms. Zwagerman says her friends from Ames have been an essential factor in her treatment and recovery, and research bears her out. In 2006, a study of nearly 3,000 nurses with breast cancer found that women without close friends were four times as likely to die from the disease as women with 10 or more friends. And notably, proximity and the amount of contact with a friend wasn’t associated with survival. Just having friends was protective.
Bella DePaulo, a visiting psychology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 whose work focuses on single people and friendships, notes that in many studies, friendship has an even greater effect on health than a spouse or family member. In the study of nurses with breast cancer, having a spouse wasn’t associated with survival.
While many friendship studies focus on the intense relationships of women, some research shows that men can benefit, too. In a six-year study of 736 middle-age Swedish men, attachment to a single person didn’t appear to affect the risk of heart attack and fatal coronary heart disease, but having friendships did. Only smoking was as important a risk factor as lack of social support.
Exactly why friendship has such a big effect isn’t entirely clear. While friends can run errands and pick up medicine for a sick person, the benefits go well beyond physical assistance; indeed, proximity does not seem to be a factor.
It may be that people with strong social ties also have better access to health services and care. Beyond that, however, friendship clearly has a profound psychological effect. People with strong friendships are less likely than others to get colds, perhaps because they have lower stress levels.
Last year, researchers studied 34 students at the University of Virginia, taking them to the base of a steep hill and fitting them with a weighted backpack. They were then asked to estimate the steepness of the hill. Some participants stood next to friends during the exercise, while others were alone.
The students who stood with friends gave lower estimates of the steepness of the hill. And the longer the friends had known each other, the less steep the hill appeared.
“People with stronger friendship networks feel like there is someone they can turn to,” said Karen A. Roberto, director of the center for gerontology at Virginia Tech. “Friendship is an undervalued resource. The consistent message of these studies is that friends make your life better.”
2009년 4월 8일 수요일
2009년 3월 19일 목요일
<마가복음 4:1 - 4:9> 유명한 비유 한 가지
마가는 이 장의 대부분을 예수님의 통상적인 교육 방법이었던 비유들(34절)을 몇 가지 소개하는 데에 할애한다. 대부분의 군중들은 비유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무슨 뜻인지 스스로 파악해야 했다. 그러나 이 복음서의 독자들은 주께서 제자들에게 따로 해주신 설명을 듣는 특혜를 누리는데, 본문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도 당시의 구중들의 입장에 서서 9절까지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스스로 파악하려고 노력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비유는 길이와 복잡성에 있어서 거의 격언에 가까운 ‘의원’(2:17)의 비유와, 비사(比辭)에 가까운 탕자의 비유(눅15:11-32) 중간쯤 된다. 그렇지만 이 비유의 각 항목이 각각 어떤 뚜렷한 상(像)을 가리키고 있는지, 아니면 그 세부적인 묘사들 전체가 한 가지 사상을 전하기 위한 단순한 배경이 되는지 살펴 보아야 한다. 비유는 그 두 가지 방식을 다 취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도 이와 비슷하게 여러 가지 양식의 예화들이 나온다. 오늘날 설교에 자주 쓰이는 ‘예화들’도 같은 부류에 든다고 볼 수 있다.
예수께서 비유를 시작하시면서 “들으라-보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두 단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주께서는 청중들에게 듣고 보라고 하신다. “씨뿌리는 자를 보라.” 아마 그곳에서 보이는 언덕에서 한 사람이 실제로 씨를 뿌리고 있었던 것 같다. 비유들이란 원래 모든 사라들이 친숙히 알고 잇는 사물이나 사건들을 소재로 삼는 법이다. 그러므로 비유의 소재들과 그 외적인 의미에 잇어서 만큼은 청중들은 예수께서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지를 정확히 알았다. 비록 시대가 바뀌면서 그 중 어떤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말이다(예를 들면, 이 비유에서는 씨를 먼저 뿌린 다음에 밭을 일구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밭의 어떤 부분이 좋은 땅인지는 추수할 때나 되어서야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청중들에게 또한 ‘들으라’고 하신다. 비유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속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비유의 속뜻은 땅의 여러 가지 상태와 관계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대부분의 씨앗들과 괒ㄴ계될 수 도 있다. 아니면 반대로 자라난 씨앗에서 거둔 많은 양의 수확과 관계될 수 도 있다-왜냐하면 비유는 듣는 사람의 주목을 끌기 위해 상당한 과장법을 쓰긱도 하는데, 이 비유에서는 백배의 결실이 그것에 해당되기 대문이다(백배의 결실이리가 하면 그냔 100%가 아니라 10,000%나 된다!).
이 비유는 길이와 복잡성에 있어서 거의 격언에 가까운 ‘의원’(2:17)의 비유와, 비사(比辭)에 가까운 탕자의 비유(눅15:11-32) 중간쯤 된다. 그렇지만 이 비유의 각 항목이 각각 어떤 뚜렷한 상(像)을 가리키고 있는지, 아니면 그 세부적인 묘사들 전체가 한 가지 사상을 전하기 위한 단순한 배경이 되는지 살펴 보아야 한다. 비유는 그 두 가지 방식을 다 취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도 이와 비슷하게 여러 가지 양식의 예화들이 나온다. 오늘날 설교에 자주 쓰이는 ‘예화들’도 같은 부류에 든다고 볼 수 있다.
예수께서 비유를 시작하시면서 “들으라-보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두 단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주께서는 청중들에게 듣고 보라고 하신다. “씨뿌리는 자를 보라.” 아마 그곳에서 보이는 언덕에서 한 사람이 실제로 씨를 뿌리고 있었던 것 같다. 비유들이란 원래 모든 사라들이 친숙히 알고 잇는 사물이나 사건들을 소재로 삼는 법이다. 그러므로 비유의 소재들과 그 외적인 의미에 잇어서 만큼은 청중들은 예수께서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지를 정확히 알았다. 비록 시대가 바뀌면서 그 중 어떤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말이다(예를 들면, 이 비유에서는 씨를 먼저 뿌린 다음에 밭을 일구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밭의 어떤 부분이 좋은 땅인지는 추수할 때나 되어서야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청중들에게 또한 ‘들으라’고 하신다. 비유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속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비유의 속뜻은 땅의 여러 가지 상태와 관계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대부분의 씨앗들과 괒ㄴ계될 수 도 있다. 아니면 반대로 자라난 씨앗에서 거둔 많은 양의 수확과 관계될 수 도 있다-왜냐하면 비유는 듣는 사람의 주목을 끌기 위해 상당한 과장법을 쓰긱도 하는데, 이 비유에서는 백배의 결실이 그것에 해당되기 대문이다(백배의 결실이리가 하면 그냔 100%가 아니라 10,000%나 된다!).
2009년 3월 18일 수요일
'경영의 신'이 말하는 3가지 성공요인
역경지수(AQ)를 높여라
경영의 신으로 일컬어지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자신의 성공요인을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습니다.
"나는 하느님이 주신 3가지 은혜 덕분에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첫째, 집이 몹시 가난했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구두닦이, 신문팔이 같은 고생을 하는 사이에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둘째,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몹시 약해서 항상 운동에 힘써 왔기 때문에 늙어서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으며,
셋째, 나는 초등학교도 못 다녔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누구에게나 물어가며 열심히 배우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훌륭한 리더는 실패와 역경을 먹고 자라납니다.
산악인 딕 베스는 "인간은 쉬운 싸움에서 이기는 것보다 어려운 싸움에서 패배하면서 비로소 성장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역경은 사람을 겸손하게 합니다. 역경은 사람을 지혜롭게 만듭니다. 역경은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실패와 역경은 신이 내린 선물임에 틀림없습니다.
약이 몸에 쓰듯이 역경은 잠시 몸에 괴롭고 마음에 쓰지만 그것을 참고 잘 다스리면 많은 이로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습니다. 사업을 꾸려가다 보면 호황도 있고 불황도 있습니다.
깊은 침체의 골을 잘 이겨내는 기업은 호황기에 그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진정 위대한 리더가 되고 싶다면 실패와 역경을 피해가야 할 장애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와 선물로 적극 환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온실 속 화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기업이나 경영자, 그리고 종업원 모두 역경지수 (AQ : Adversity Quotient)를 높게 키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경영의 신으로 일컬어지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자신의 성공요인을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습니다.
"나는 하느님이 주신 3가지 은혜 덕분에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첫째, 집이 몹시 가난했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구두닦이, 신문팔이 같은 고생을 하는 사이에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둘째,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몹시 약해서 항상 운동에 힘써 왔기 때문에 늙어서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으며,
셋째, 나는 초등학교도 못 다녔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누구에게나 물어가며 열심히 배우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훌륭한 리더는 실패와 역경을 먹고 자라납니다.
산악인 딕 베스는 "인간은 쉬운 싸움에서 이기는 것보다 어려운 싸움에서 패배하면서 비로소 성장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역경은 사람을 겸손하게 합니다. 역경은 사람을 지혜롭게 만듭니다. 역경은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실패와 역경은 신이 내린 선물임에 틀림없습니다.
약이 몸에 쓰듯이 역경은 잠시 몸에 괴롭고 마음에 쓰지만 그것을 참고 잘 다스리면 많은 이로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습니다. 사업을 꾸려가다 보면 호황도 있고 불황도 있습니다.
깊은 침체의 골을 잘 이겨내는 기업은 호황기에 그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진정 위대한 리더가 되고 싶다면 실패와 역경을 피해가야 할 장애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와 선물로 적극 환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온실 속 화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기업이나 경영자, 그리고 종업원 모두 역경지수 (AQ : Adversity Quotient)를 높게 키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2009년 3월 4일 수요일
불편하게 삽시다 - 송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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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휘목사님께서 집회로 오셨을 때, 나온지 얼마 안되는 책 한 권을 주고 가셨다. 제목은 <불편하게 삽시다. 선교하며 삽시다>인데, 이번에 새순교회 선교집회인도를 위해서 호주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다. 책의 내용은 쉽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대단히 도전이 되는 글들이다. 이 책에 나오는 글들은 그 동안 목사님이 바울선교회지나 교회지에 쓰신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엮은 것 같다. 대단한 도전이 되기에 일부분을 소개한다.
바울선교회와 안디옥교회는 살과 뼈의 관계이다. 떼어 놓으면 공멸한다. 바울 선교회 재정의 절반 이상을 안디옥교회가 책임지고 있다. 처음 출발도 안디옥교회에서 시작했고 지금도 그렇다. 200여명의 선교사와 사역을 위해 기도하고 전적인 협력을 해야 한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안디옥교회를 발전시키자. 주인 노릇하면 안된다. 그러나 주인의식은 가져야 한다. ‘우리는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다,’ ‘불편하게 삽시다,’ ‘우리 교회는 기도 없으면 파산하는 교회가 됩니다,’ 라고 외쳤다. 안디옥 교회와 일생 운명을 같이 해야 한다. 주님의 몸인 안디옥교회를 사랑함은 최선의 의무이다. 안디옥교회에 뼈 묻을 각오를 하라. 크리스머스 선물, 주일학교 시상식, 봉사자에 대한 일체의 사례가 없는 교회이다. 보상은 없어도 순수하게 일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안디옥교회를 통하여 주님께 충성하도록 부름받았다. 지난해에 몸살 날 지경까지 충성한 그 보상은 하늘에서 받을 것이다. 또 다시 2002년을 선물 받았다. 방관자의 길목에 서지 말고 충성의 대열에 바짝 다가서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강이 모든 성도 가정 가정마다 영원토록 풍성하시기 바란다. 할렐루야! (이동휘, 불편하게 삽시다, 128쪽)
선교를 위해서 불편을 정상으로 여기고 지금까지 달려온 이동휘목사님은 한 마디로 대단한 분이다. 설교하실 때에는 조용조용하신데, 막상 책에서는 예리한 사령관의 음성으로 글을 쓰셨다. 이목사님도 대단하시지만, 목사님의 리더십을 따라 아무런 불평없이 깡통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예산의 70퍼센트까지 선교와 구제를 위해 믿음으로 집행해온 전주안디옥교회 교인들도 보통 대단한 분들이 아니다.
책을 읽는 동안 에어 캐나다 보잉 777 비행기는 토론토를 떠난지 22시간만에 지구 반바퀴를 돌아 호주 시드니에 도착했다. 시드니의 첫 인상은 조용하다는 것이다. 35년전에 이민왔던 밴쿠버를 연상케한다. 물론, 바쁜 곳을 아직 보지 못했으니까 조용하다고 말을 할 것이다. 여기저기 푸른 잔디와 시퍼런 하늘이 따뜻함으로 반겨주고 있다. 바로 하루 전에는 눈에 쌓인 토론토에서 몸을 떨고 있었는데, 어느새 몸이 풀렸다. 한 마디로 혼동 상태이다. 이번에 새순교회가 나를 초청한 것은 우리교회가 시도하고 있는 소수민족 선교에 대한 관심 때문인 것 같다. 새순교회 교인들은 아랍 민족과 캄보디아 민족 등 이곳 시드니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 이민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불편하게’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 우리교회와 좋은 관계가 될 것이다. 서로의 노하우를 나누며 격려해 주면 참 좋겠다. 소수민족선교를 직접 담당하시는 정헌범 목사님도 함께 오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운 생각을 해본다. 먼 거리에서 온 만큼, 최선을 다해 성령님의 인도 아래 새순교회를 격려하고 축복해 드리고 싶다.
2009년 3월 3일 화요일
<누가복음 10:25 - 10:28> 사랑의 계명
율법사의 질문에는 그의 의도가 담겨 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는 개인 신앙에 관심이 있었다. 자기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보장해 주는 신앙에 말이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공동체를 위한 신앙이었다. 이스라엘의 율법은 주재이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선한 공동체의 관계를 위한 율법이었다. 이러한 신앙 공동체가 하나님께 대한 개인적인 순종과, 죽은 후의운명을 위한 우산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율법사는 자기 개인의 운명에 관해서 질문하였다. 예수님은 그에게 율법을 생각하게 하시고 그의 대답이 옳다고 인정해 주신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신 비유는 그 율법사가 실상은 자기가 알고 있다고 하는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율법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한다. 이 두 가지 요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없다. 하나님과 이웃은 ‘그리고’라는 접속사로 연결된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 인간 관계에서 공의를 요구하시는 하나님, 인간의 모든 압제를 자신에 대한 죄로 간주하여 심판하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다음본문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보여주듯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웃인지 그 한계선을 긋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계시없이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을 안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각도에서 이 계명들을 말할 수 없다. 출발점에서는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의 육체적이고 정서적인 불쌍한 처지를 만나면서 시작하였다. 그는 그를 위해서 기도하지도 않고 설교하지도 않았다. 다른 경우라면출발점이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일 수도 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에서도 회개와 자비의 문제가 출발점이다. 출발점은 그 사람의 상황에 놓여 있으며, 사랑의 성격이나 하나님의 방침에 달려 있지 않다. 율법사의 출발점은 자신의 영생에 대한 관심이었다. 예수님은 그에게 다른 출발점을 가리키신다. 즉, 신앙이란 관계성의 문제이기도 하며, 사회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며, 실제적인 생활 과정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함을 지적하신다. 그것은 여리고로 가는 길에 구급차 대기소를 만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가로등을 설치하고 고속도로 순찰대를 두는 것도 포함한다. 할세이(A. H. Halsey)는 이렇게 지적한다: “도시 위생시설 설비는 전후( ) 계획에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정치권에서 벌인 도덕운동들보다 더 많은 생활의 기회를 공평하게 해주었다. ”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우선순위가 매겨지지 않는다. 그 둘은 하나님, 이웃, 그리고 믿음의 본질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결정한다. 우리는 그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로 시작할 수 있지만, 마칠 때는 언제나 두 가지로 마쳐야 한다.
2009년 2월 25일 수요일
은혜는 겨울에 자란다
시련의 시기는 삶의 가치를 다할 수 있는 선물.
잔잔한 물은 노련한 뱃사공을 만들지 못한다.
혹독한 경쟁상황과 열악한 환경을 이겨 냈을 때
사람도 기업도 비로소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계속 햇볕만 쬐면 사막이 되어 버리듯
인생에 성공만 있으면 자만하기 쉽고
이웃의 아픔을 함께할 가슴을 갖기 힘들다.
- 이승한, 홈플러스 사장
강한 의지와 성공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난을 겪으면서 강한 의지가 생겨나게 됩니다.
고난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게 해줍니다.
또한 고난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게 하여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하게 하는 은혜도 베풀어줍니다.
잔잔한 물은 노련한 뱃사공을 만들지 못한다.
혹독한 경쟁상황과 열악한 환경을 이겨 냈을 때
사람도 기업도 비로소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계속 햇볕만 쬐면 사막이 되어 버리듯
인생에 성공만 있으면 자만하기 쉽고
이웃의 아픔을 함께할 가슴을 갖기 힘들다.
- 이승한, 홈플러스 사장
강한 의지와 성공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난을 겪으면서 강한 의지가 생겨나게 됩니다.
고난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게 해줍니다.
또한 고난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게 하여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하게 하는 은혜도 베풀어줍니다.
2009년 2월 23일 월요일
기도제목을 나누는 방도 하나 만들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온유 10순의 blog가 보기 좋습니다.
올 한 해 기도를 담당했는데, 특별히 기도제목을 나누고 같이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방 이름은 STG (Speak to God)으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Always Pray
온유 10순의 blog가 보기 좋습니다.
올 한 해 기도를 담당했는데, 특별히 기도제목을 나누고 같이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방 이름은 STG (Speak to God)으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Always Pray
골리앗을 이기는 19가지 습관*
골리앗을 이기는 19가지 습관*
Max Lucado 지음 / 두란노
♣ 물러서지 말라
당신을 지명하여 부르신다
그렇게 일곱 아들이 다 지나갔다. 7번 후보도 합격점을 받지 못했다.
이상하다 여긴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을 세어본다.
"하나,둘,셋,넷,다섯,여섯,일곱. 어라? 이새 씨, 아들이 여덟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신데렐라의 계모가 비슷한 질문을 받고 움찔했던 걸 기억하는가? 이새도 그랬다.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삼상16:11)
여기서 '말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학카톤'(haqqaton)으로,
단순한 나이의 개념을 넘어 등급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가장 늦게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제일 변변치 못한 형제(꼬마,꼴찌)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당시 양을 지키는 건 학카톤의 몫이었다. 모자라서 혹 사고를 일으킬지 모르니 아예 일을 만들지 못할 곳에다 내보내자는 속셈이 깔려 있는 것이다. 사방에 양뿐인 허허벌판에서 무슨 말썽을 피울 수 있겠는가? 다윗은 양들과 함께 푸른 초장에 있었다.
장차 성경은 무려 66장에 걸쳐서 다윗의 행적을 기록한다. 예수님 말고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신약성경만 하더라도 그 이름을 59번이나 언급한다. 다윗은 장차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예루살렘을 건설하고 거기 살게 될 주인공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일컬어 '다윗의 아들'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의 펜 끝에서 가장 위대한 시편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왕이며 용사이고, 음유시인이며, 거인 골리앗을 처단한 맹장으로 추앙 받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가족 모임에 끼지도 못하는 신세였다. 신뢰 받지 못하고 잊혀진 아이, 궁벽한 촌구석에서 하루하루 단조로운 일을 하며 지내는 꼬마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째서 하나님은 다윗을 지목하셨을까?
누구나 다윗의 초장을 걸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건 바로 '소외'라는 이름의 풀밭이다.
집이 얼마나 넓은지, 체격이 얼마나 좋은지, 피부가 무슨 색인지, 어떤 차를 타는지, 어느 브랜드의 옷을 입는지, 얼마나 넓고 좋은 사무실에서 일하는지, 무슨 학위를 가지고 있는지, 따위를 가지고 등급을 나누려드는 사회통념 때문에 모두들 지쳐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헌신하고 희생해도 보상을 받지 못한다. 윗사람은 성실하게 자기 일을 해내는 쪽보다 입 안의 혀처럼 알아서 가려운 데를 긁어 주는 부하를 더 좋아한다.
교사는 수업 준비를 잘 해 온 아이보다 귀엽게 구는 녀석에게 먼저 눈길을 준다. 심지어 부모도 잘난 자식을 내세우고 조금 처지는 아이는 들판으로 내돌리기 일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외라는 거인이 세상을
호령할 수밖에 없다.
당신 역시 소외의 골리앗이라면 진저리가 나는가? 그렇다면 이제 놈에게서 눈을 뗄 때가 되었다. 그런 평가에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정작
중요한 건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으신 분의 생각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라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사무엘상 16장 7절은 사회의 학카톤(말째)에게 주신 말씀이다.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한 약속이다. 하나님은 아무도 버리지 않고 온전히 들어 쓰신다.
주님은 심판을 피해 달아났던 모세를 사용하셨다. 요나는 하나님을 피해 도망쳤지만, 결국 쓰임을 받았다. 라합은 매음굴로, 삼손은 못된 여인의 품으로 피했다. 야곱은 제자리를 맴돌았고, 엘리야는 산속으로 몸을 숨겼다. 사라는 자포자기에 빠졌고, 롯은 악한 무리들과 어울렸다. 하지만 주님은 이들을 모두 불러다 일꾼으로 삼으셨다.
다윗은 어땟는가? 하나님은 베들레헴 주위의 산간을 누비는 소년을 보셨다. 소년은 빛나기는커녕 지루하기 짝이 없는 양치는 일을 하면서도 조금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하나님은 형의 목소리를 빌어 다윗을 부르셨다. "다윗아, 잠깐 집에 들어왔다 가야겠다. 어떤 어른이 널 좀 보자고 하신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저 호리호리한 십대 아이에 지나지 않는다. 소년의 몸에 묻어 온 양 노린내 때문에 다들 코를 잡으며 눈쌀을 찌푸린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삼상 16:12)
Max Lucado 지음 / 두란노
♣ 물러서지 말라
당신을 지명하여 부르신다
그렇게 일곱 아들이 다 지나갔다. 7번 후보도 합격점을 받지 못했다.
이상하다 여긴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을 세어본다.
"하나,둘,셋,넷,다섯,여섯,일곱. 어라? 이새 씨, 아들이 여덟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신데렐라의 계모가 비슷한 질문을 받고 움찔했던 걸 기억하는가? 이새도 그랬다.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삼상16:11)
여기서 '말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학카톤'(haqqaton)으로,
단순한 나이의 개념을 넘어 등급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가장 늦게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제일 변변치 못한 형제(꼬마,꼴찌)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당시 양을 지키는 건 학카톤의 몫이었다. 모자라서 혹 사고를 일으킬지 모르니 아예 일을 만들지 못할 곳에다 내보내자는 속셈이 깔려 있는 것이다. 사방에 양뿐인 허허벌판에서 무슨 말썽을 피울 수 있겠는가? 다윗은 양들과 함께 푸른 초장에 있었다.
장차 성경은 무려 66장에 걸쳐서 다윗의 행적을 기록한다. 예수님 말고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신약성경만 하더라도 그 이름을 59번이나 언급한다. 다윗은 장차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예루살렘을 건설하고 거기 살게 될 주인공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일컬어 '다윗의 아들'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의 펜 끝에서 가장 위대한 시편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왕이며 용사이고, 음유시인이며, 거인 골리앗을 처단한 맹장으로 추앙 받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가족 모임에 끼지도 못하는 신세였다. 신뢰 받지 못하고 잊혀진 아이, 궁벽한 촌구석에서 하루하루 단조로운 일을 하며 지내는 꼬마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째서 하나님은 다윗을 지목하셨을까?
누구나 다윗의 초장을 걸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건 바로 '소외'라는 이름의 풀밭이다.
집이 얼마나 넓은지, 체격이 얼마나 좋은지, 피부가 무슨 색인지, 어떤 차를 타는지, 어느 브랜드의 옷을 입는지, 얼마나 넓고 좋은 사무실에서 일하는지, 무슨 학위를 가지고 있는지, 따위를 가지고 등급을 나누려드는 사회통념 때문에 모두들 지쳐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헌신하고 희생해도 보상을 받지 못한다. 윗사람은 성실하게 자기 일을 해내는 쪽보다 입 안의 혀처럼 알아서 가려운 데를 긁어 주는 부하를 더 좋아한다.
교사는 수업 준비를 잘 해 온 아이보다 귀엽게 구는 녀석에게 먼저 눈길을 준다. 심지어 부모도 잘난 자식을 내세우고 조금 처지는 아이는 들판으로 내돌리기 일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외라는 거인이 세상을
호령할 수밖에 없다.
당신 역시 소외의 골리앗이라면 진저리가 나는가? 그렇다면 이제 놈에게서 눈을 뗄 때가 되었다. 그런 평가에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정작
중요한 건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으신 분의 생각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라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사무엘상 16장 7절은 사회의 학카톤(말째)에게 주신 말씀이다.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한 약속이다. 하나님은 아무도 버리지 않고 온전히 들어 쓰신다.
주님은 심판을 피해 달아났던 모세를 사용하셨다. 요나는 하나님을 피해 도망쳤지만, 결국 쓰임을 받았다. 라합은 매음굴로, 삼손은 못된 여인의 품으로 피했다. 야곱은 제자리를 맴돌았고, 엘리야는 산속으로 몸을 숨겼다. 사라는 자포자기에 빠졌고, 롯은 악한 무리들과 어울렸다. 하지만 주님은 이들을 모두 불러다 일꾼으로 삼으셨다.
다윗은 어땟는가? 하나님은 베들레헴 주위의 산간을 누비는 소년을 보셨다. 소년은 빛나기는커녕 지루하기 짝이 없는 양치는 일을 하면서도 조금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하나님은 형의 목소리를 빌어 다윗을 부르셨다. "다윗아, 잠깐 집에 들어왔다 가야겠다. 어떤 어른이 널 좀 보자고 하신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저 호리호리한 십대 아이에 지나지 않는다. 소년의 몸에 묻어 온 양 노린내 때문에 다들 코를 잡으며 눈쌀을 찌푸린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삼상 16:12)
2009년 2월 7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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